음악지도
일렉트릭 레이디랜드 (1968)
일렉트릭 레이디랜드의 가사가 향하는 곳과 실제로 만든 곳을 한눈에.
제작 막바지에 스튜디오 기술자가 앨범명을 "Electric Landlady"로 잘못 바꿔 하마터면 그 이름으로 나올 뻔했다.
지도에서 보기핵심 장소
올림픽 스튜디오에서 녹음 (1968)
녹음 장소 올림픽 스튜디오 — 앨범 녹음은 1967년 7월부터 1968년 1월 사이 미국과 영국의 여러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. 런던의 올림픽 스튜디오는 밴드가 녹음한 영국 스튜디오 중 한 곳이다. Google 지도 · Apple 지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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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코드 플랜트에서 녹음 재개 (1968)
녹음 장소 레코드 플랜트 — 1968년 4월 18일 뉴욕의 새로 문을 연 레코드 플랜트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재개되었다. 챈들러가 프로듀스하고 에디 크레이머와 게리 켈거런이 엔지니어를 맡았다. Google 지도 · Apple 지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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앨범 이야기
개요
- 일렉트릭 레이디랜드: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정규 스튜디오 앨범
- 1968년 10월 발매된 더블 앨범
- 익스피리언스 앨범 중 제작이 헨드릭스 단독 크레딧인 유일한 작품
- 밴드 최고의 상업적 성과작, 유일한 1위 앨범
- 미국은 1968년 10월 16일 라이프라이즈 레코드, 영국은 9일 뒤 트랙 레코드에서 발매
- 밥 딜런의 "All Along the Watchtower" 일렉트릭 재해석 수록, 익스피리언스 최고 판매 싱글이 됨
- 워치타워 싱글: 영국 6위, 미국 20위
- 발매 당시 평단을 당혹스럽게 했으나 이후 헨드릭스 최고작 중 하나로 평가받음
배경
- 1967년 7월부터 1968년 1월까지 미국과 영국 여러 스튜디오에서 녹음 시작
- 1968년 4월 18일 뉴욕에 새로 문을 연 레코드 플랜트 스튜디오에서 녹음 재개
- 프로듀서는 chas 챈들러, 엔지니어는 에디 크레이머와 게리 켈거런
- 챈들러는 헨드릭스의 완벽주의와 반복 테이크 요구에 점점 좌절함
- 헨드릭스가 친구와 손님의 스튜디오 출입을 허용해 컨트롤 룸이 혼잡해짐
- 챈들러는 이 작업 과정에서 헨드릭스와의 업무 관계를 끊음
- 노엘 레딩은 1968년 중반 자신의 밴드 팻 매트리스를 결성, 익스피리언스 활동 병행이 어려워짐
- 그 결과 헨드릭스가 많은 베이스 파트를 직접 연주함
녹음
- 헨드릭스와 미치 미첼이 3회 세션에 걸쳐 "Gypsy Eyes" 50회 이상 테이크 녹음
- 타이틀 곡과 "Long Hot Summer Night"의 백킹 보컬을 헨드릭스가 직접 노래함
- 15분짜리 블루스 잼 "Voodoo Chile"에서 잭 캐세이디가 베이스, 스티브 윈우드가 오르간 연주
- 크레이머가 백마스킹, 코러스, 에코, 플랜징 등 실험적 스튜디오 기법 사용
- 더블 LP는 익스피리언스 앨범 중 전곡이 스테레오로 믹싱된 유일한 작품
표지
- 헨드릭스는 린다 이스트먼의 컬러 사진을 원했으나 레코드사는 요청을 대체로 무시함
- 리프라이즈는 카를 페리스가 찍은 헨드릭스 얼굴의 흐릿한 적색·황색 사진을 사용
- 트랙 레코드는 데이비드 몽고메리가 찍은 검은 배경 앞 누드 여성 열아홉 명 사진을 사용
출처: en.wikipedia.org
아티스트
결성
- 1942년 11월 27일 시애틀 출생, 본명 James Marshall Hendrix. 1958년 15세에 기타를 시작함.
- 1961년 미 육군에 입대했다가 1962년 제대함. 이후 테네시와 내슈빌 등지에서 치틀린 서킷 밴드로 활동함.
- 1966년 말 애니멀스의 베이시스트 Chas Chandler가 매니저가 되면서 영국으로 이주함. 이후 Jimi Hendrix Experience를 결성함.
멤버
- Jimi Hendrix Experience는 헨드릭스(기타·보컬), 베이시스트 노엘 레딩, 드러머 미치 미첼로 구성됨.
- 이후 헨드릭스는 Billy Cox와 함께 Band of Gypsys와 Cry of Love 투어 라인업에서 활동함.
주요 활동
- 1967년 Experience는 "Hey Joe", "Purple Haze", "The Wind Cries Mary"로 영국 톱텐 히트 3곡을 기록함.
- 1967년 몬터리 팝 페스티벌 공연 이후 미국에서 유명해짐.
- 앨범 Electric Ladyland(1968)는 가장 성공한 작품이자 미국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한 유일한 앨범임.
-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, 1970년 와이트섬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 공연함.
- 1970년 9월 런던에서 바르비투르산염 관련 질식으로 사망함, 향년 27세.
- 롤링스톤은 그를 역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꼽았으며, 1992년 Experience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됨.
출처: en.wikipedia.org
평
발매 당시
- 멜로디 메이커: 전체를 "mixed-up and muddled"라 평했으나 "All Along the Watchtower"만 걸작으로 꼽음
- 롤링 스톤의 토니 글로버(1968): 헨드릭스의 원곡들이 때로 구조가 없다고 평함
- 글로버는 "1983... (A Merman I Should Turn to Be)"의 "heavy handed guitar"에 다소 실망했다고 함
- 글로버는 곡들을 묶는 "energy flow"를 높이 평가하고 헨드릭스를 "amazing"이라 묘사
- 스테레오 리뷰의 로버트 크리스트고: 록의 "most important recent innovation"을 보여 주는 폭발적 작품으로 평가
- 크리스트고는 프로듀싱을 "the best job of stereo for its own sake I know"라 칭찬
재평가
- 존 페리: "one of the greatest double-albums in Rock"로 묘사
- 마이클 헤틀리: "most critics agree"라며 헨드릭스 야망의 "the fullest realization"이라 평가
- 기타 월드 편집장 노에 골드바서: 헨드릭스의 최고작으로 꼽음
- 피터 도젯: 록 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
- 클래식 록: 100대 록 앨범 목록에서 10위
- Q: 2003년 100대 앨범 중 하나로 선정
기록
- 1968년 11월 중순 빌보드 톱 LP 1위, 2주간 정상 유지
- 영국 차트 6위, 12주간 차트 진입
- 1999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 헌정
- 2000년 콜린 라킨 올타임 톱 1000 앨범 32위
- 롤링 스톤 500대 앨범: 2003년판 54위, 2020년판 53위
출처: en.wikipedia.org
여담
- 헨드릭스는 목소리에 자신이 없어 보컬을 스튜디오 가림막 뒤에서 녹음하는 경우가 많았음
- 여러 음반 판매점이 표지를 "pornographic"이라며 판매 금지, 일부는 접는 표지를 뒤집어 팔거나 갈색 포장지에 싸서 판매
- 제작 후반 스튜디오 기술자가 앨범명을 "Electric Landlady"로 잘못 바꿈, 헨드릭스가 제때 알아챔
- "Long Hot Summer Night"의 백킹 보컬은 헨드릭스가 직접 노래함
출처: en.wikipedia.org · es.wikipedia.org · fr.wikipedia.org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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